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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62주년 6.25(한국전쟁)

by 마니팜 2012.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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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어렸을 때 불렀던 6.25노래입니다. 요즈음의 풍요로운 세대들은 전쟁의 고통스런 추억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끼기란 쉽지 않겠지만 우리의 앞세대들은 뼈저리게 느꼈던 쓰라리고 비참한 고통이었습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대립하다가 결국 소련 스탈린의 지원을 등에 업은 김일성의무력적화 통일시도로 인해 약 150만명의 사망자와 360만명의 부상자를 낸 6.25전쟁이 시작되어 3년1개월동안 한반도 전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전쟁으로 10만명의 전쟁고아와 30만명의 전쟁미망인이 생겼으며 1,000만명의 이산가족도 발생하였습니다.

 

이렇게 반만년 역사상 유례없고 전세계 전쟁사상으로도 손꼽힐 피해를 낸 동족상잔의 대참극이 바로 62년전 오늘 새벽에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부터 개성, 장단, 의정부, 동두천, 춘천, 강릉 등 3.8선 전역에서 동시에 인민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은 다음날 아침에야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1950년 6월 26일자 동아일보>

 

정예국군이 적을 요격하고 있으며 시내민심은 지극히 평온하다는 보도입니다.

 

북한 인민군은 단 4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3개월만에 대구, 부산 등 일부 경상도지역을 제외한 남한 전역을 장악하였지만 낙동강전선에서의 국군과 지원학도병의 필사적인 저항에 부딪힙니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전쟁은 9월 15일 맥아더장군 지휘하의 국제연합군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인민군의 후방을 기습공격함을써 연합군쪽에 유리하게 전세가 뒤집어지기 시작합니다.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한 연합군은 진격을 개시하여 10월에는 평양까지 점령하고 이에 위협을 느낀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장기전양상으로 넘어갑니다.

 

 

 

 

 

 

 

 

무려 3년을 밀고 당기면서 한반도에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힌 한국전쟁은 결국 소련의 중재로 휴전이 이뤄지면서 끝이 났지만 지금까지도 남북의 대립과 갈등은 국민들의 통일염원을 비웃듯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있다고 하면 저는 두개의 가정을 해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유엔군의 참전 결의가 없었다면 이라는 가정입니다. 당시 소련은 안전보장이사회의 이사국이면서도 중국문제로 안보리에 불참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부권행사가 없이 유엔군의 참전결의가 이뤄질 수 있었고 우리나라는 막대한 국제연합군의 지원과 명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소련이 안보리에 참여하여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전쟁의 양상은 사뭇 달라졌을 것입니다.

 

두번째 가정은 맥아더원수가 건의했던 만주폭격이 이뤄졌더라면 하는 가정입니다. 중공군을 견제하는 만주폭격이 이뤄지고 장개석군을 참전시켰다면 역시 전쟁의 양상은 보다 통일에 유리하도록 전개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바로 어제 우리나라가 20-50클럽에 들어갔습니다. 인구가 5천만명이 되면 내수시장만으로 안정된 경제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하여 의미를 두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국민소득 2만불, 인구 5천만의 대국반열에 전세계 국가중 일곱번째로 들어갔다는 이 소식으로 가난한 시절을 보냈던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국가적 자긍심을 가질만 합니다.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세계에서 두번째로 가난한 나라였던 우리 대한민국이 이제는 그 어떤 분야에서도 빠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나라로 선진국들로부터는 놀라움의 대상으로, 후발국들로부터는 본받아야할 롤모델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사실은 우리 스스로 놀라울 정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20-50클럽에 가입하였다고 하여 인구감소와 급속한 노령사회 도래, 빈부 차이 심화, 경제 양극화, 교육정책의 실패 등 우리가 지금 당면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덮어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이만큼 발전한 나라는 오직 우리나라가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는 적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87년에 작고하신 분이 남기신 파란만장한 삶의 회고 감동영상>

 

그리고 이러한 역사를 만들어내기까지 피와 땀과 열정을 바쳤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세대의 희생과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과거의 힘겹고 옹색했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저는 우리 사회에 아직 많은 갈등과 문제가 있고 풀어야 할 새로운 숙제도 꾸준히 생기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의 저력은 능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나갈 수 있으리라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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